품질 판정을 AI에게 맡긴 날,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
30년간 육안으로 불량을 골라낸 품질팀장이, AI Agent에게 판정 권한을 넘긴 첫 주를 되돌아본다.

이 편지를 쓰는 이유
김 팀장에게.
나는 지금 네가 있는 자리에 30년을 앉아 있었다. 사출 성형 라인 끝, 컨베이어 옆 스툴. 하루 4,000개 부품이 지나가고, 그중 불량을 골라내는 게 내 일이었다. 손끝 감각과 눈이 곧 시스템이었다.
3월에 회사가 AI Agent를 붙였다. 비전 카메라 네 대, 판정 알고리즘 하나. 내 역할이 '최종 확인자'에서 '예외 처리자'로 바뀌었다. 솔직히 말한다. 첫 주는 모욕적이었다.
기계가 나보다 잘 보는 것
AI Agent는 0.3mm 크랙을 잡아낸다. 나는 0.5mm부터 보인다. 이건 사실이다.
하루 4,000개를 보면 오후 3시쯤 집중력이 떨어진다.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AI Agent의 판정 로그를 일주일치 뽑아봤다. 내가 '양품'으로 넘긴 것 중 7개를 Agent가 잡아냈다. 거꾸로 Agent가 '불량'으로 뺀 것 중 내가 보기에 괜찮은 건 3개였다.
7 대 3. 숫자가 불편했다.
내가 정말 잃은 것
판정 속도? 아니다. 그건 원래 기계가 빠르다.
내가 잃은 건 '내가 마지막 방어선'이라는 자부심이다. 30년 경력의 핵심이 거기 있었다. 후배들이 판정을 물어볼 때, 내 대답이 곧 기준이었다. 그 기준이 이제 알고리즘 안에 있다.
내가 얻은 것
이상한 일이 생겼다. 판정에서 손을 떼니, 불량의 원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요일마다 크랙이 늘어나는 패턴. 금형 3번의 냉각 채널 막힘. 원료 로트 교체 직후의 수축률 변화. 이런 건 하루 4,000개를 눈으로 쫓을 때는 볼 여유가 없었다. AI Agent가 판정을 맡으니, 나는 처음으로 왜 불량이 나는지를 추적할 시간이 생겼다.
3주 만에 금형 3번 냉각 라인을 세척했다. 불량률이 1.8%에서 0.6%로 떨어졌다. 이건 Agent가 한 게 아니다. 내가 했다.
김 팀장에게
AI Agent는 네 눈을 대체하는 게 아니다. 네 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해주는 거다.
판정은 기계에게 줘라. 대신 원인을 봐라. 30년 경력이 진짜 빛나는 건 양품과 불량을 가르는 순간이 아니라, 불량이 왜 태어나는지 아는 순간이다.
그게 내가 한 달 걸려 배운 것이다.
창원에서,
박정수 올림
MOAI Team
Building the future of manufacturing 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