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초
나는 자동차 부품 2차 협력사에서 생산관리를 15년째 하고 있다. 우리 공장은 매일 아침 8시에 생산계획을 확정한다. 그런데 확정한 계획이 그날 오후까지 살아남는 경우는 드물다.
긴급 오더가 들어온다. 금형이 깨진다. 원자재 입고가 밀린다. 그때마다 나는 엑셀을 연다. 라인별 가동률, 납기, 재고, 작업자 숙련도를 머릿속에서 돌린다. 재수립에 걸리는 시간, 평균 4시간. 그 사이 라인은 멈추거나 엉뚱한 것을 만든다.
올해 초, 본사 권유로 AI Agent 기반 생산계획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다. 제약 조건을 넣으면 Agent가 알아서 라인을 재배치하고, 금형 교체 순서를 정하고, 납기 위험 품목을 앞으로 끌어온다.
처음 돌렸을 때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 11초.
솔직히 무서웠다.
속도가 아니라 빈도의 문제
4시간짜리 작업이 11초가 되면 뭐가 달라지는가. 대부분 "빨라졌네"에서 생각이 멈춘다. 나도 그랬다.
진짜 변화는 다른 곳에서 왔다. 하루에 한 번 짜던 계획을, 이제 수시로 다시 짤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전에 금형이 깨지면 11초 후 새 계획이 나온다. 점심 전에 긴급 오더가 들어오면 또 11초. 오후에 원자재가 도착하면 한 번 더.
계획이 깨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깨진 계획을 다시 세우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그냥 깨진 채로 하루를 보내는 게 문제였다.
내가 잘한 건 아무것도 없다
Agent가 내놓는 계획의 품질은 내 것과 비슷하거나 약간 나았다. 차이가 크지 않다. 내가 15년간 쌓은 감이 그 정도는 된다.
하지만 나는 하루에 한 번이 한계였다. 4시간을 쏟으면 다른 일을 못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참고 기존 계획을 밀어붙였다. "이 정도면 돌아가겠지." 이 문장을 나는 15년간 수천 번 말했다.
Agent는 참을 이유가 없다. 상황이 바뀌면 바로 다시 짠다. 최적이 아닌 계획을 굳이 고수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직 불편한 것들
Agent가 왜 그렇게 배치했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결과만 던진다. 납기가 빠듯한 품목을 뒤로 뺄 때가 있는데, 이유를 물으면 "전체 납기 준수율 최적화"라는 답만 온다. 납득이 안 되면 내가 수동으로 뒤집는다.
그리고 현장 작업자의 컨디션은 아직 변수에 없다. 야근 다음 날 베테랑의 속도가 떨어지는 건 내 머리에만 있는 정보다.
하나만 묻겠다
당신의 공장에서 오늘 생산계획이 깨졌을 때, 다시 세우는 데 몇 시간이 걸렸는가.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라인은 뭘 하고 있었는가.
MOAI 팀
제조 AI의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